가을 되니 생각나서 풀어보는 가위눌림과 기이한 경험담 다섯 가지
공포 얘기는 폭염보다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때 읽는 게 최고임
고등학교 때 가위 눌리는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입대 한 달 전에 눌린 가위는 차원이 달랐음
대대전술훈련 매복 중에 자리 잡고 앉았던 곳이 알고 보니 봉분이었음
혹한기 훈련 중 몸이 굳으면서 발끝에서부터 뭔가 기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음
선배 자취방에서 자던 날, 가위에 눌린 채로 누군가 식칼을 들고 내려다보는 걸 봤음
축구 보고 기분 좋게 쌀 씻던 날, 식탁 너머에서 날 지켜보던 검은 형체를 봤음
1 — 가을 문턱, 공포 얘기 하기 딱 좋은 계절
역시 공포 얘기는 한여름보다 더위가 가시고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올랑 말랑할 때가 최고인 거 같음. 폭염 속 공포 얘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워서 읽기도 귀찮은 그런 느낌이라서 그동안 겪은 가위나 기이한 경험들 짧게짧게 몇 개 풀어봄.
2 — 입대 한 달 전 처음 겪은 진짜 가위
고삐리 땐 육체적으로 많이 약했는데 어린 혈기만 가지고 몸을 혹독하게 굴렸음. 그래서 그땐 가위도 참 많이 눌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가위는 애들 장난이었음. 입시가 끝나고 몸이 편안해질 무렵부턴 가위에 안 눌리다가 성인이 되고 영장을 받고 군입대를 한 달가량 남겨놓고부턴 또다시 몸을 혹사하기 시작했음.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하루에 2~3시간만 자고 놀러만 다녔음. 당연히 몸이 말이 아니었고 입대라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몸무게가 49킬로까지 빠졌을 때였음. 그런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너무 피곤했는지 아주 푹 잠이 들었는데, 충분히 자고 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몸이 개운해지는 딱 그런 잠이었음.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안 움직이는 거임. 오랜 가위의 경험으로 손가락 끝에서부터 힘을 주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중력의 별에 껌딱지처럼 누워있다고 해야 될까, 조금 움직였다 싶으면 다시 펴지고 조금 구부렸다 싶으면 다시 펴지고 계속 그러는 거임. 여태 그런 가위는 없었어서 가끔 귀찮아서 그냥 자기도 했는데 이번엔 안 되겠다 싶어서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힘든 걸 참고 손목도 살짝 들릴 정도로 정말 모든 걸 오른손에만 집중해서 움직이려고 애썼음. 그리고 힘겹게 팔꿈치를 굽히려는 찰나에 무언가가 귀에다 대고 아주 중저음에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음. "오~ 제법 움직이는데?" 순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있는 힘껏 힘을 줬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깨어났음. 그 뒤론 한동안 집에서 잠을 안 잤음.
3 — 대대전술훈련 매복 중 마주친 정체불명의 목소리
이건 군바리 때 대대전술훈련 중에 겪은 일임. 해안경계부대라 3개 소대가 3개월씩 격오지에 투입되는데 타이밍이 좋아서 유격도 혹한기도 다 제꼈는데, 굵직하고 짧은 훈련은 좀 많이 뛰었음. 정기적인 대대전술훈련 말고는 군단급 이상에서 실시하는 랜덤추첨방식 훈련을 많이 해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소대였음. 짧고 굵은 FM훈련만 뛰다 보니 대대전술훈련에 오분대기조로 투입됐는데, 오분대기조는 사건이 터졌을 때 제일 먼저 출동해서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하는 열 명 정도 인원의 팀이라 평상시에도 출동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함. 당시 대대장이 출신이 안 좋아 힘없는 대대장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상급부대에 잘 보이고 싶어서 비교적 유능한 병사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떠맡겼음. 훈련 자체는 안 힘든데 대대장이 힘이 없으니 사소한 실수도 큰 실수가 되어버려서 준비가 엄청 귀찮을 정도였음. 오분대기는 일찌감치 훈련 장소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후발대가 도착해서 해가 저물 무렵 산 하나를 빙 둘러 매복을 쳤음. 오분대기는 임무를 마저 끝내고 뒤늦게 매복지로 향했는데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땐 날이 이미 저문 후였음. 칠흑 같은 산길에 희미한 달빛 하나에 의존해서 걷는데 바로 코앞밖에 안 보이는 상황이었고, 날이 어두워져서 투입되니 좋은 자리도 없고 준비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대충 아무 자리나 맡아 숨어있어야 했음. 3명씩 나뉜 조 중에 내가 있던 조는 산 아래 도로가 훤히 보이고 달빛도 잘 들어오는 좋은 자리를 발견했는데, 하필 추석을 앞두고 깔끔하게 이발한 봉분 두 개가 있는 곳이었음. 아무리 훈련이지만 남의 봉분에 자리 깔고 앉기는 뭐해서 조금 더 옆으로 이동했는데, 봉분 주변이라 시야도 탁 트이고 바닥도 꽤 정리된 곳이 있어서 그 자리에 몸을 낮추고 앉았음. 살짝 언덕이 져서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있고 수풀도 적당히 우거진, 매복지로선 손색없는 명당이었음. 얼마나 지났을까 스르르 졸음이 왔는데, 짬도 좀 먹었고 그런 상황에서 왠만하면 안 자는 편이라 최대한 그 상황을 누리려고 버텼음. 그래도 피곤하니 졸음과 싸우다 결국 좀 졌는지 귓가에서 "야 야 야 야 야 야" 하는 소리가 들렸음. 화들짝 놀라서 깼는데 너무나도 고요한 적막만 흘렀고, 앞에 두 명은 뻗어있어서 이 모습 들키면 피곤해지니 나라도 깨 있어야겠다 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건빵을 뜯어 먹기 시작했음. 얼마 지나 또 살며시 잠들었는지 다시 귓가에서 "야 야 야 야 야 야" 소리가 들려서 X됐다 싶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역시 적막만 흘렀음. 혹시 몰라 조심히 수하도 해봤지만 뻘줌할 만큼 고요했고 무전기도 아주 고요했음. 더 이상 잘 수가 없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틀 무렵 철수명령이 떨어졌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하다가 내가 앉은 자리를 봤더니 깔끔하게 이발되지 못한 잡초 무성한 봉분이었음. 어두운 밤이라 그게 봉분인지 언덕인지 구분 못 한 채로 기대고 앉았던 거임. 그 귓가에 소리치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4 — 혹한기 훈련 중 발끝부터 기어오르던 느낌
이것도 부대에서 겪은 거임. 이때는 원래 내 군생활에 없었어야 되는 혹한기였는데 지휘관 말 한마디에 어쩔 수 없이 뛰게 된 재수 없는 훈련이었음. 위에서 언급했듯 큰 훈련은 잘 제꼈고 혹한기도 사단장 명령으로 해안부대는 열외였는데, 사단장이 바뀌면서 그딴 거 없다 다 뛰어라고 해서 뛰게 됐음. 알기론 해안경계 하는 우리 중대에선 5~6년간 혹한기 훈련을 해본 적이 없어서 행보관을 제외한 전 인원이 처음 뛰는 훈련이었고, 준비 과정이 엄청 힘들었음. 한 2주간 준비하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 같음. 그렇게 훈련에 들어가고 숙영 첫날 침낭 안에 이불 넣어두고 따뜻하게 자려다 질식해서 죽을 뻔한 경험으로 시작부터 재수 없는 훈련이었음. 훈련 끝나고 주말 아침점호 받고 밥 먹고 총 닦으라고 해서 투덜대며 총 닦다가 그대로 기절해서 밤까지 기절해있기도 할 만큼 피로가 누적돼 있었음. 눈뜨자마자 근무 갔다가 복귀해서 자려고 누웠는데 낮에 기절해있어서인지 쉽게 잠이 안 왔음. 그때 왜인지 침상 밑 공간에 뭐가 있을까, 그 깜깜한 곳에 혼자 들어가 있으면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는지 막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살짝 정신이 들었는데 머리가 어지러웠음. 길에 공사할 때 드릴로 땅에 구멍 뚫는 것 같은 진동이 내무실 밖 복도 끝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 베개가 떨리는 것 같았고,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 때처럼 머리가 위아래로 떨리는 느낌이 들었음. 그러더니 가위에 눌리려는 듯 몸이 굳는 게 느껴져서 몸을 움찔거려 깨려고 했는데, 옆으로 돌아누워 있었지만 자꾸 그 자세가 불편해서 똑바로 누우면 가위에 눌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몸이 배기고 불편해서 뒤척이다 반대쪽으로 돌아누우려고 몸을 뒤집는 순간, 딱 똑바로 누운 자세가 됐을 때 가위에 눌렸음. 뭐가 보이진 않았지만 무언가 발끝에서 몸쪽으로 기어서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음. 그때 누군가 내무실 문을 열더니 근무 나가려고 준비하는 분대 후임병 같은 게 들어와서 머리 오른쪽에 앉았음. 날 보는지 안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머리맡에 앉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형체는 분명 봤지만 얼굴은 못 봤음. 한참 깨려고 노력하던 찰나 내무실 문을 열고 후임병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가위에서 깼음. 그러고 아까와 똑같이 머리맡에 앉으려는 후임을 불러 물었음. "야 너 아까도 들어와 앉아있었냐?" "아닙니다 계속 행정반에 있다가 이제 들어왔습니다" "아까 여기 앉아있던 거 너 아냐?" "아닙니다 가위눌리셨습니까?" 이러는데 더럽게 무서웠음. 그럼 아까 가위와 사투를 벌일 때 옆에 앉아있던 놈은 누구였을까. 걔였으면 중간에 나간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없었음.
5 — 선배 자취방에서 본 식칼 든 형체
이건 전역 후 한 달 정도 선배 일을 도와주면서 자취방에 머물 때 얘기임. 선배들이 농담으로 그 선배한테 니네 집은 어디로 가든 들어오지 말라는 쉴드가 쳐져있는 것 같다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그러곤 했음. 사실 그 집에 있으면 괜히 피곤하고 살도 빠지는 것 같고 현관문 여는 순간 장막이 쳐져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집이 그런 건지 사람이 그런 건지 모르지만 묘한 마력이 있는 집이었음. 한번 들어가서 하룻밤 잔 사람은 무언가에 이끌려 밖에 나가기 힘들어지고, 어쩌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신 돌아오지 말아야 될 것 같은 그런 집이었음. 한번은 몸이 조금 피곤했을 때 잠을 자는데 가위에 눌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일어나려 하기도 귀찮고 확인하기도 귀찮고 그렇게 센 놈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음. 이상하게 여겼어야 되는데 이상한 생각을 못 하고 그냥 누가 들어왔나 확인해봐야 되는데 귀찮다는 느낌만 들었음.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이쪽으로 걸어오는 기분이 들고, 옆에 서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음. 뭐야 하며 살짝 눈을 떴는데 누군가 식칼을 양손에 쥐고 가슴 높이로 들고서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가슴팍으로 칼을 내려꽂았음. 화들짝 놀라서 피하면서 깼는데 아무것도 없었고, 고요함 속에 들리는 시계 소리와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기분 나쁘게, 가위에서 깼다는 안도감보다는 찝찝함만 남겼음.
6 — 쌀 씻던 날 식탁 너머로 지켜보던 검은 그림자
지지난주쯤 올림픽 축구 3~4위전 할 때 얘기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집안일을 좀 많이 했는데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였고, 그래도 축구 한일전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음. 축구를 보려고 잠을 안 자고 기다리다 새벽 3시 반에 신나게 봤음. 준결승 브라질전에선 간식과 음료를 준비해놓고 보다가 처절한 패배를 지켜보곤 복통을 느껴서 한일전에선 물 한잔 떠놓고 혼자 거실에서 봤음. 박주영의 슛과 구자철의 슛이 아주 통쾌했고 눈물이 다 나려고 했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기쁜 마음에 찬밥 볶아서 아빠 아침 먹여 출근시키고 누나 아침밥 남겨놓고, 점심에 먹을 밥을 하려고 쌀을 씻고 있었음. 축구가 졌으면 그냥 잤겠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어서 쌀에 벌레가 좀 있는 것 같아 고개를 파묻고 씻고 있는데, 창밖엔 버스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티비에선 연신 골 장면을 보여주는데 귀 바로 옆에서 중저음에 단조의 허밍음이 들렸음. 고개를 확 들었는데 무언가 식탁 너머로 날 쳐다보고 있던 사람 크기의 검은 형체가 현관 쪽으로 휙 움직였음. 뭘까 싶었지만 확인하러 가보기엔 그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게 너무 귀찮아서 다시 고개 처박고 쌀을 마저 씻고 전기밥통에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 후 물 한잔 마시고 방에 들어가서 달게 잤음. 쌀 씻는 날 훔쳐보던 그건 누구였을까. 현관으로 사라진 건지 방으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미안하지만 무섭지 않았고 지금도 안 무서우니 그러니 옆집이나 윗집으로 가보라고 하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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