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홀에서 예식 진행하는 아는 누나가 겪었다는 신부 아버지 지각 사건

 아는 누나 중에 웨딩홀에서 예식 진행하는 일을 하는 누나가 있음


몇 년째 그 일을 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를 들려줬음


2012년 9월 어느 토요일, 마지막 예식을 앞두고 신부 아버지가 도착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함


신랑 어머니는 하객들에 대한 예의 때문에 절대 예식을 늦출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함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던 신부를 보면서 누나 가슴이 다 미어졌다고 함


근데 신랑 입장 멘트가 나가는 그 순간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함


1 — 예식 진행이라는 일, 누나가 하는 업무


누나는 웨딩홀에서 불 켜고 수건 개는 자질구레한 일부터 음향 조절, 신랑신부 미팅, 사회자와 주례자 미팅, 예식 진행까지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고 함. 어떻게 보면 예식 진행의 핵심을 맡고 있는 고급 인력이라면서 웃었는데, 본인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누군가의 예식에 엄청난 누가 될 수 있어서 항상 초긴장 상태로 꼼꼼히 일한다고 했음. 부담감이 백배라고 함.


2 — 2012년 9월, 마지막 팀 예식을 앞두고


때는 2012년 9월 말 어느 토요일이었다고 함. 지방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돼 신식 건물이었던 그 웨딩홀은 그날도 꽉 찬 예식 스케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함. 여러 차례 예식을 뚝딱뚝딱 해결하고 마지막 팀 예식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사전 미팅에서 마지막 신랑님이 좀 까다로운 편이라 예약실 실장님도 조심하라고 엄포를 놨다고 함. 앞 팀이 끝나자마자 폭풍 정리를 한 다음 신랑님께 다가가 예행연습을 하자고 말을 걸었는데, 예식 시작 10분 전이라 서둘러 얘기하고 있던 그때 신부 어머님이 누나 손을 딱 붙잡았다고 함.


3 — 신부 아버지가 아직 도착 못 했다는 다급한 소식


아직 신부 아버지가 도착을 못 했으니 예식을 조금만 늦춰줄 수 없냐고 신부 어머님이 사정했다고 함. 신부 아버지가 서울에서 손님들과 함께 대절한 버스를 타고 오는 중인데 아직 도착을 못 했다는 거였음. 나름 일찍 출발했지만 황금연휴라 차가 밀려서 30분이나 늦게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함. 그 지역은 평소 서울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지만 바닷가라 주말엔 유독 차가 많이 막혔다고 함. 신부 어머니를 비롯해 신부 남동생, 삼촌, 친척들까지 누나한테 정말 절실하게 사정을 했다는데, 다음 팀이 없으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누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신랑댁 가족의 허락이 필요한 사안이었다고 함.


4 — 신랑댁에 양해를 구했지만 돌아온 단호한 거절


그래서 신부님 남동생과 함께 신랑댁 접수석으로 갔다고 함. 손님들을 맞고 계신 신랑댁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늦춰 예식을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는데, 예상과 다르게 신랑 어머님이 아주 완강하게 안 된다고 하셨다고 함. 하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는데, 정작 하객들은 어차피 예식장에 안 들어가고 바로 식권 타서 식당으로 내려가는 상황이었고, 주례선생님도 그 예식장 쪽 알바 선생님이라 괜찮다고 하셨고, 예식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일가친척과 신랑신부 친구들뿐이라 30분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함. 좋은 말로 이리저리 설득을 해봤지만 신랑 어머님은 끝까지 안 된다고 하셨다고 함. 신랑 어머님 말도 일리가 있고 예식 날짜와 시간이라는 게 고심해서 택한 거라는 건 알지만, 너무 매몰차게 반대하시니 신부님댁이 안됐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함.


5 — 중립을 지키며 내놓은 차선책


그래도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 신부님댁에는 기존대로 시간 맞춰 예식을 진행하고, 신부는 아버지 손 대신 다른 친척분 손을 잡고 들어가거나 신랑과 동시에 입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함. 신부 어머님은 너무 속상해서 눈물 흘리기 직전이셨고, 친척 중 한 분은 계속 신부 아버님과 통화하면서 위치를 파악하고 계셨다고 함. 신부 어머님과 신랑 어머님 사이가 친하지 않은 건지 사돈댁이라 어려워서 그런 건지, 신부 어머님이 신랑한테 다가가서 어머님 좀 설득해달라고, 좀 있으면 도착한다는데 멀쩡한 신부 아버지가 하나뿐인 딸 손도 못 잡아주면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부탁했다고 함. 그래도 신랑댁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어수선한 상태에서 시간은 흘러 2시가 됐다고 함.


6 — 시간을 벌기 위해 꺼낸 식전 영상


더 늦게 시작했다가는 나중에 독박은 본인이 다 쓰게 되겠다 싶어서 예식 시작 준비에 들어갔다고 함.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려고 원래 안 해도 되는 양가 어머님 화촉점화 예행연습을 일부러 천천히 진행했고, 양가 어머님과 신랑신부가 입장하려고 식장 뒤에 대기해 있을 때 식전 영상을 틀어버렸다고 함. 본래 신랑신부가 식 전에 하객들이 앉아서 구경할 겸 틀어달라고 줬던 5분짜리 영상인데, 안 틀고 소중히 간직만 하고 있다가 사회자의 개식사 멘트 뒤에 순서를 끼워 넣어서 그때 틀었다고 함. 불을 끄고 5분간 영상이 흘러나오는 내내 똥줄이 타는 줄 알았고, 제발 아버님이 지금 도착해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기다렸지만 아버님은 오지 않았고, 뒤이어 양가 어머님의 화촉점화 순서와 주례선생님의 양가 소개가 이어졌다고 함.


7 — 결국 신랑 입장까지 가버린 순간


그리고 대망의 신랑신부 입장 순서가 됐다고 함.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사회자가 다음은 신랑신부 입장이 있겠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스피커에 울려퍼지게 말했다고 함.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신부가 고개를 돌려 비상문을 빤히 쳐다보더니, 체념이 담긴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고 함. 그 짧은 순간 신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봐버렸을 때 가슴이 미어져 요동치는 것 같았고, 이렇게 딱한 신부가 어딨을까 싶어서 같이 슬픈 상념에 젖어 있었다고 함.


8 — 비상계단에서 들려온 외침


그때 갑자기 비상 계단 쪽에서 누군가가 스톱, 스톱, 왔어요, 스톱 왔어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함. 정신이 퍼뜩 들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부 아버지가 그 시점에 도착한 거였다고 함. 누나는 재빠르게 앞쪽 사회자석을 향해 머리 위로 엑스 표시를 파닥파닥 해댔고, 그걸 알아본 진행 파트너가 황급히 사회자에게 신랑 입장으로 순서를 바꿔서 멘트를 날리게 했다고 함. 눈치 빠른 사회자가 먼저 신랑 입장 순서가 있겠다고,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이 입장할 때 큰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함.


9 — 정신없이 챙긴 장갑과 꽃, 그리고 신부 입장


그사이 누나는 신부 접수석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주인 없이 놓여있던 하얀 면장갑과 꽃다발을 챙겨왔다고 함. 비상계단을 통해 신부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사람이 꾸역꾸역 타는 엘리베이터 대신 5층까지 계단으로 단숨에 뛰어오시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계셨다고 함. 시간 많으니까 숨부터 크게 들이쉬시라고 달래드리고 꽃과 장갑을 빛의 속도로 장착시킨 다음 신부 옆에 세워드렸다고 함. 그리고 사회자의 신부입장 멘트에 맞춰 신부와 아버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뿐히 손을 맞잡고 입장을 하셨다고 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부 남동생은 입장하는 누나 뒤에서 엉엉 오열을 했는데,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이 그렇게 우니까 코끝이 찡했다고 함. 혼주석에 앉아 계시던 신부 어머님도 저고리로 눈물을 연신 훔치셨다고 함.


10 — 무사히 끝난 예식, 누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


그렇게 결혼식은 무사히 끝이 났고, 예식이 끝난 뒤엔 진이 빠져서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고 함. 이런 스펙타클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매우 뜻깊고 감동적이고 보람찬 하루였다고 했음. 10분 정도 늦게 시작한 걸로 신랑 쪽이 태클을 걸면 어쩌나 쫄아 있기도 했지만, 양가 다 계산도 잘 하고 가셨다는 얘길 듣고 속이 후련했다고 함. 예식 진행은 생방송이라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참 많지만, 이 결혼식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면서 신랑신부 이름도 아직 안 잊었다고 웃었음. 그때 그 신랑신부는 지금쯤 잘 살고 있겠지 하면서 누나가 얘기를 마무리했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로테이션 소개팅 후기, 다섯 번 만에 진짜 여자친구가 생겼다

편의점 야간 알바 후기, 결국 호신용 스프레이까지 챙기게 됐다

다단계 합숙 경험, 천만원 쓰고 밤에 몰래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