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밤거리에서 홍콩사람 행세하며 겪은 일들

 시드니에서 밤거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겪은 일들이 있음

친구놈이 자꾸 날 홍콩 사람이라고 소개해서 벌어진 일들임

덕분에 웃긴 일도 아쉬운 일도 참 많았음

한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를 싫어한다는 이유였는데

그 덕에 별의별 일을 다 겪었음

그중 한 명은 아직도 잊지 못할 인연이 됐음


1 — 시드니 클럽 첫 방문, 순식간에 홍콩 사람이 되어버림


첫 클럽 방문은 금요일 밤 시티에 있는 클럽이었음. 한국 여자분들이 정말 많았고 남자는 주로 서양애들이랑 인도애들이었음. 수트에 넥타이를 맨 건 같이 간 홍콩 친구랑 나뿐이었음. 그 친구는 얼굴 때문인지 말빨 때문인지 금방 한국 여자 두 분을 데리고 왔는데, 나를 홍콩 사람이라고 소개해놨더라. 다음 날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한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거였음. 그렇게 순식간에 홍키가 되어버린 나는 두 분이랑 서투른 영어로 몇 마디 나눴는데, 친구 옆에 앉은 여자분이랑 서로 맘에 들었는지 소곤대더니 바이 데니 엔조이 투나잇 하고 둘이 나가버렸음. 만난 지 30분 만이었음. 남은 여자분한테는 몸이 안 좋다고 거짓말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로 회사에서 홍키 데니로 불리게 됐음. 첫 클럽 경험치고는 참 허무했던 밤이었음.


2 — 두 번째 클럽, 엄마 전화 한 통에 들통난 국적


이번에 간 곳은 로컬 아시안들이 많은 클럽이었는데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저번보다 확실히 세련된 느낌이었음. 이번에도 친구는 어느새 사라져서 여자들 사이에 껴 있었고, 여기서 유학하는 한국 여자 두 분이었음. 그중 한 분은 귀엽고 순수한 스타일이었는데, 이 친구가 또 날 홍콩 사람으로 소개해놨음. 사실대로 말하기엔 분위기상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음. 급 호감을 보여주는 그녀 앞에서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뻐 보였음. 얘기할수록 연애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음. 친구가 자기 아파트로 가서 놀자고 제안했고, 그날 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음. 다음 날 아침 곤히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엄마다 잘 지내니 밥 잘 먹고 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네 걱정 마세요 잘 지내요 하고 대답해버렸음. 전화를 끊고 보니 옆에서 자다 깬 그녀가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한국 사람이었어? 라고 물었음. 그 후로 몇 번 더 만났지만 왠지 서로 안 맞는 느낌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음.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녀 표정이 잊히지 않음.


3 — 마지막 그녀, 좋았지만 결국 놓쳐버린 인연


다신 클럽에 안 간다고 다짐했지만 외로운 건 이기지 못하고 또 나갔던 토요일 밤이었음. 이번에 간 곳은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이는 클럽이었고, 혼자 온 40대 50대 서양 남자들도 자주 보였음.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음. 이 동네에서 밤에 클럽 다니다 보면 은근히 자주 마주치는 풍경이었음.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키 큰 여자 한 분이 있었고, 이번엔 처음부터 한국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음. 잠도 못 자면서 일하고 랭귀지 스쿨까지 다닌다는 그녀 얘기를 들을수록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호감이 빠르게 커졌음. 외모만 보고 넘겨짚었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두 번 데이트하면서 서로 코드도 잘 맞고 처음 걱정했던 부분은 사라진 채로 볼수록 예쁜 사람이었음. 세 번째 데이트는 회사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추천했던, 시티에서 멀지 않은 해변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오페라하우스랑 하버브리지 야경이 보이는 조용한 모래사장 벤치에서 첫 키스를 하게 됐음. 분위기에 서로 불이 붙었다가 그녀가 오빠 여기서 그만 하고 말해서 바로 멈추고 옷매무새를 고쳐줬음.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그녀가 오빠 같이 살까, 같이 살면 다 줄게 라고 애교스럽게 말했는데, 순간 뭔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음. 그녀는 그냥 나를 좋아해서 한 말이었을 텐데, 결국 내 입에서는 그건 좀 곤란한데 라는 말밖에 안 나왔음. 그렇게 그녀와도 헤어졌고, 그 후로 친구도 더 이상 날 부르지 않았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아직도 아쉬움이 남음. 그날 이후로 밤거리를 다니는 것도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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