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초반때 보조출연(엑스트라) 알바하며 겪은 일들
20대 초반 때 처음 했던 알바가 보조출연, 소위 엑스트라였음
연예인 되고 싶어서 시작하면 꿈 깨는 게 좋다고 먼저 말해주고 싶음
한 10분 일하고 10시간 버스에서 대기한 적도 있었음
사극 찍을 땐 그냥 욕 먹으면서 시작해서 욕 먹으면서 끝남
자정 넘기기 직전에 촬영 끝내는 웃긴 관행도 있었음
일산에서 새벽 2시까지 찍고 공원에서 노숙하고 바로 사극 대기했던 날도 있었음
1 — 방송국 프로그램은 내주와 외주로 나뉨
벌써 16년 전, 스무 살 때 얘기임. 그때 처음 했던 알바가 보조출연자, 소위 엑스트라였음. 사실 이 일은 알바로 하는 사람이랑 직업으로 하는 사람 사이에 거의 갭이 없고, 굳이 따지면 마음가짐 차이 정도인데 그게 꽤 크게 작용함. 프로그램 제작은 크게 내주랑 외주로 나뉘는데, 내주는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하는 거고 외주는 외부 제작사가 만드는 거임. 드라마 끝날 때 나오는 제작사 이름들이 그거임. 내주랑 다르게 외주 제작 프로그램은 돈 문제가 자주 생김. 예전에도 입금이 늦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음.
2 — 이걸로 캐스팅될 생각은 접는 게 좋음
첫 번째 포인트는, 이걸로 눈에 띄어서 연예인 되겠다는 꿈은 접는 게 좋다는 거임. 연예인을 꿈꾸는 친구들은 대부분 아카데미 같은 데서 무임금으로 단체 출연함. 더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면서 무급으로 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한 상황이라 보조출연으로 캐스팅되는 일은 거의 없음. 애초에 보조출연자는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알바를 하다가 발탁되는 케이스는 기대하기 어려움.
3 —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함
두 번째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임. 드라마는 1초짜리 장면을 위해 필름을 얼마나 쓸지 아무도 모름. 미니시리즈일수록 더 심함. 일일드라마는 그나마 쉴 틈 없이 촬영이 진행되지만 사극이나 미니시리즈는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안 됨. 몇 컷 간격으로 사람을 쓰다 보니 10분만 일하고 10시간을 버스에서 대기한 적도 있었음. 그러다 보니 같이 온 다른 출연자들이랑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혼자 노는 방법도 나름대로 찾게 됨.
4 — 욕 먹는 것도 그러려니 하게 됨
세 번째는 욕 먹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임. 특히 사극은 그냥 욕 먹으면서 시작해서 욕 먹으면서 끝남. 욕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속한 팀의 반장인데, 며칠 일해보면 이해가 됨. 수십 명을 혼자 통솔하다 보면 사람들이 말을 정말 안 들음. 특히 나이 있으신 분들이 말을 잘 안 들었는데, 여름에 뙤약볕 아래서 관복 입고 촬영하면 진짜 힘드니 그럴 만도 했음. 여성분들한테는 심하게 안 하지만 젊은 남자들한테는 가차 없었음. 익숙해지면 무덤덤해지고, 한 5일쯤 지나면 반장이 오히려 장난도 침.
5 — 시간에 자유로워야 버틸 수 있음
마지막이자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임. 촬영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름. 저는 알바 개념으로 하는 편이라 지부장한테 일당 적어도 좋으니 짧은 것만 달라고 자주 얘기했는데, 이상하게 밤새는 촬영만 골라서 보내줬음. 바다에서 30명 넘게 필요한 떼씬은 야간씬까지 찍어야 해서 1박 2일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극에서 전쟁씬을 찍으면 거의 100퍼센트 그렇게 됨. 3일 연속으로 촬영한 적도 있었음. 촬영 전 집합 시간은 보통 아침 7시라고 공지되는데, 실제로는 6시라고 해놓고도 1년 동안 제 시간에 다 모인 걸 본 적이 없었음. 보통 여의도에서 모였고, 신뢰가 충분히 쌓이면 촬영 장소로 바로 오라고 10시까지 오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다음 얘기였음. 저 같은 경우엔 아침 8시에 갑자기 땜빵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투덜대면서 바로 용인 민속촌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음.
6 — 자정 직전에 촬영을 끝내는 이유
외주 제작 드라마에는 좀 악랄한 관행이 있는데, 자정이 넘어가면 일당이 두 배가 됨. 당연히 외주사 입장에선 부담이라, 23시 55분에 보조출연 촬영 끝났다고 발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음. 보통은 0시 30분까지는 2배가 아니라 1.5배로 쳐주는 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음. 이때 촬영지가 서울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일산 같은 곳이 되면 더 고생함. 한번은 퀴즈육감대결에서 타이거 마스크 역할로 새벽 2시까지 일산 SBS에서 촬영하고, 스태프 차 타고 여의도에서 내린 다음,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모기랑 싸우면서 공원에서 노숙하고, 그대로 사극 왕과 나 촬영 대기에 들어간 적도 있었음.
7 — 결론은 비추, 그래도 궁금하다면
결론은 단순함. 정말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추천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추함. 그때는 첫 알바라서 힘든 건지 아닌지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는 다시는 못 할 것 같음. 시간이 정말 남아돌고 사람과의 만남이 그립다면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추천하긴 어려움. 진지하게 관심 있는 분이라면 태양기획, 한강예술 같은 곳을 알아보시면 됨. 이 글은 16년 전 경험을 토대로 쓴 거라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봐주시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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