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선임 이야기, 휴가 계획서를 위조했다가 걸렸다

 군대에서 만난 선임 중에 진짜 최악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음

휴가 계획서에 행보관 싸인 받은걸 까먹고 잃어버려놓고

결국 소대장이랑 행보관 싸인을 지가 직접 위조했음

걸리기 전까지는 행보관이 전화 받다 대충 싸인해준거라고 우기더니

결국 혼자만 휴가 못 나가고 남았음


1 — 휴가 계획서, 그 지긋지긋한 결재 라인


2013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음. 상병 초쯤이었고 강원도 양양에 있는 공병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음. 그때 부대에서는 휴가 계획서라는 걸 써서 분대장, 소대장, 행보관, 중대장 순서로 검토받고 싸인 받아야 휴가를 나갈 수 있었음. 소대장님까지는 워낙 쿨한 분이라 쉽게 넘어갔는데 행보관 싸인 받는게 진짜 힘들었음. 완전 운빨이었음. 기분파라서 기분 나쁘면 꼬투리 잡고 잔소리하면서 다시 오라 그러고, 기분 좋을 땐 보지도 않고 그냥 싸인해주는 그런 사람이었음.


2 — 계획서를 잃어버린 맞선임


나보다 2달 위인 맞선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행보관 싸인까지 다 받아놓고 그 계획서를 잃어버렸음. 당연히 행보관은 다시 해주지 않았음. 그렇게 휴가 전날, 중대장 싸인이랑 신고만 남은 상황에서 이 선임이 어떻게 했는지 행보관 싸인을 다시 받아왔더라. 지나가면서 봤는데 전전긍긍하더니 그래도 받긴 받았구나 싶어서 그 선임 계획서도 받았음. 그때 휴가자가 나 포함 6명 정도였는데 내가 중간 정도 위치라 중대장 신고 전에 다른 사람들 계획서까지 모아서 결재 파일철에 넣어두고 있었음.


3 — 중대장실 앞에서 걸린 위조


그 파일철 들고 중대장실 앞에서 대기하면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행정반에 있던 행보관님이랑 눈이 마주쳤음. 나 부르더니 그거 가지고 와보라고 함. 표정이 딱 화났을 때 표정이라 불안했음. 파일철 건네니까 신경질적으로 뺏듯이 가져가서 휙휙 넘겨보는데 내용은 안 보고 이름만 보더라. 그러다 한 장에서 멈추더니 "이 새끼 잡아와" 그럼. 그 선임 데려왔고 나는 계획서 때문에 얼떨결에 같이 있게 됐음. 행보관이 대뜸 이거 언제 나한테 받았냐고 물으니까 그 선임이 행보관님이 전화 받으시면서 대충 싸인해주신거라고 대답함. 행보관이 "내가?" 이러면서 되묻고 언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결국 그 선임이 소대장이랑 행보관 싸인을 자기가 직접 했다고 실토함.


4 — 나머지는 무사히 휴가를 갔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같이 혼나는 분위기다 싶었는지 행보관이 파일철 건네주면서 나가라고 함. 나가고 몇 분 뒤에 그 선임이 결국 진실을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음. 행보관이 완전 격노해서 이 새끼 휴가 안 보낸다고 노발대발했다는데, 다행히 전체 휴가 통제까지는 안 갔음. 그 선임 빼고 일이등병이랑 최고참까지 다 무사히 싸인이랑 신고 끝내고 다음날 휴가 나갔음. 아침까지 휴가 못 나가서 울상이던 그 선임 얼굴이 아직도 생각남. 결국 영창을 가거나 전체 휴가 통제되는 일은 없었고, 그 선임도 보통 8시에 나가는 휴가를 9시에 나갔다고 나중에 복귀해서 들었음.


5 — 그 선임의 다른 일화들


그냥 별 뜻 없이 문득 생각나서 적어본 글인데 그 선임 관련 일화가 몇 개 더 있음. 이등병 때 현금 없다고 나라사랑카드로 5000원만 긁겠다면서 빌려가더니 나중에 보니 만원 긁었다고 함. 후임들한테 거의 안 빌린 적이 없었음. 상병 때는 병장이 피엑스 갈 때 담배 좀 사다달라고 카드 주면서 부탁했는데 그 카드로 자기 담배를 긁었음.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겪은 건데, 휴가 계획서 잃어버려서 놓고 가야 하는 상황에 행정반 전화로 중대장한테 연락하려고 했더니 이 선임이 전화 못하게 감시하면서 나중에 하면 안되냐고 자기가 연락해봤다고 은근슬쩍 자기 위주로 일을 처리시켰음. 그 얘기를 다른 생활관 가서 후임한테 하면서 욕한 걸 마침 그 선임이 들어와서 걸렸음. 자기도 잘못한 거 아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문 닫고 나가길래 그래도 아나보다 싶었는데, 제대하고 나서 알고보니 내가 지 욕했다고 선임들한테 다 일러바쳤더라. 근데 나는 안 털렸음. 평소 행실이 워낙 안 좋아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던 덕분인듯함. 이 이야기는 100% 경험담임.


지금 생각해봐도 그 선임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음.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믿고 부탁하는 것도 쉽게 못 하게 됐던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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